이 글은 '등산하는 디자이너'가 음성인식으로 기록하고 에디터가 편집 및 발행하는 글입니다.
당연히 가장 기본적인 먹고, 씻고, 일하기, 집안일 등 삶의 기본적인 행위들도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었을 뿐더러 "아니 이런 것도 못 하게 된다고?!"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것들까지 6개월간 경험한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젓가락질
손끝에 힘을 계속 줘야 하는 젓가락질 당연히 못 한다. 응애응애 포크 주세요. 젓가락질처럼 손가락에 섬세하게 힘을 써야 하는 경우는 무조건 손목이 아파오기 때문에 포크나 숟가락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가끔 포크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식당도 있는데 그래도 역시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점점 먹는 스킬이 늘어가고 있다. 면요리를 먹을 때는 면을 가위로 난도질 하여 국밥처럼 퍼먹기, 깻잎은 포크 사이에 껴서 돌돌 말아 먹기 등등. 그래도 아직 김에 밥 싸먹는 건 고난이도에 속한다.
하지만 아직도 나도 가끔 밥 차릴 때 포크 대신 젓가락을 내 자리에 세팅하기도 한다. 역시 습관이 무섭다. 외식을 할 때 포크로 먹기 쉬울지, 손목에 무리가 오지는 않을지 메뉴를 생각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2. 글씨 쓰기
젓가락질과 같은 맥락에서 글씨 쓰기도 고정된 상태로 반복해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특히 무거운 팬은 더더욱 불가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글씨를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가벼운 연필을 아주 살짝 잡아 최대한 힘을 빼고 휘갈겨 쓴다. 덕분에 아이패드 펜슬은 몇 달 동안 잡아본 적도 없고, 편지나 카드도 못 쓰고 있다. 요즘 제일 성가신 건 외출했을때 출입 명부 작성하기. 하 힘들다.
3. 핸드폰과 아이패드 조작
당연히 노트북이나 컴퓨터로 작업하는 건 못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건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도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를 사용할 때 계속 손 동작을 고정해서 스크롤이나 스와이프를 해야 하는데 이 동작을 지속할 경우 손목에 굉장히 무리가 온다.
그래서 처음 손목이 아프기 시작한 2개월 정도는 아무것도 못하고 아이패드로 넷플릭스 시리즈만 하루종일 틀어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애플에 손쉬운사용이라는 기능을 알게 된 후로는 음성명령을 사용하여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조작하고 있다. 손 한번 안 대고 카톡 보내기도 가능한 수준이긴 하지만 아직 손쉬운 사용이라고 말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아 손 조금 쉬운 사용, 손 조금 덜 쓰는 사용 이 정도 명칭이 적정한 듯ㅋ 워낙 조작이 매끄럽지가 않기도 하고 모든 걸 음성 명령으로 조작하는 건 그냥 핸드폰을 손으로 조작하는 것보다 내가 느끼기에 몇 백배의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정말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에겐 인내심이 바닥났다 데헷. 애플워치 살까?
웬만한 건 이제 번호도 거의 외울 정도로 익숙해져있긴 하지만 이것도 요즘 코로나 때문에 출입 명부 작성 대신 QR 체크인 하라는 곳들도 있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다. QR 체크인 하는 것보다 차라리 손으로 쓰는 게 낫다.
그리고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를 들고 조작할 수가 없기 때문에 책상이나 침대에 올려놓고 음성 명령을 하다 보니 자꾸 고개를 쳐박고 하거나 누워서 하게 되어 자세가 안 좋아졌다. 그래서 여러 가지 거치대를 구매하여 사용했더니 훨씬 삶의 질이 높아졌다!!
4. 책이나 신문보기
책이나 신문을 손으로 잡고있는 것도 은근 무리가 온다. 그래서 독서대에 올려놓고 책장만 넘기는 방법을 써봤는데 아니 이게 웬걸 갑자기 손가락 관절까지 다 아파 버리기. 꺄륵꺄륵. 그 뒤로 충격먹고 책은 절대 안 보고 신문도 상태 좋을 때만 보고 있다.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봐도 될 것 같긴 한데 그 정도로 책을 보고 싶지는 않다^^ 요즘 소리로 읽어 주는서비스도 많아 시도해봤지만 듣다가 좀만 있으면 바로 딴 생각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실패!
5.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외출하기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밖에 돌아다니려면 일단 우산을 들 때 손에 힘을 줘야되고 손목에 긴장을 한 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손목에 좋지 않다. 비가 많이 올 줄 모르고 하루 외출했다가 완전 악화되는 바람에 7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장마와 태풍으로 인해 한 달 동안 방콕해야만 했다. 왜 하필 올해 날씨가 이 모양인지 집에서 히키코모리가 됨. 손목 때문에 가벼운 우산도 선물 받았는데 갑자기 손목 통증이 너무 심해지는 바람에 그 우산도 쓰기가 어려워져버려 속상하다.
6. 머리 감고 말리기
머리를 감으려면 손끝에 힘을 줘야되고 또 물 먹은 머리가 얼마나 무거운가. 머리 빗고 말리고 드라이 하는 것도 힘들고... 원래 장발이었던 나는 결국 단발로 자를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올해 결혼 계획이 있었어서 웨딩 촬영을 위해서 정말 자르고 싶지 않았는데 손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라야만 했다. 지금은 괜찮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양치질 할 때나 머리 감을때도 웬만하면 힘을 많이 안 주고 살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의식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옛날처럼 엄청 빡빡 힘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7. 바디로션 바르기
온몸 구석구석 바디로션을 바르려면 은근히 손목을 요리저리 꺾고 손에도 힘을 많이 줘야 돼서 손목에 부담이 많이 가 바디로션을 못 바르게 되었다. 같은 이유로 바디스크럽도 못 하고 있는데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어 피부가 점점 건조해지고 있어 걱정이다.
8. 에코백이나 숄더백 메기
에코백이나 숄더백을 메려면 계속 손으로 내려오는 끈을 어깨에 올려줘야 되기 때문에 요즘에는 크로스백만 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패션테러가 되고 있다. 더불어 손에 아무 짐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웬만해선 무조건 가방 안에 다 때려 넣어야함. (그래서 큰 가방을 샀다. ^----------------^)
9. 대중교통 타기
버스나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을 수 없다. 웬만하면 출입문 근처에 앉아서 가야만 하는데 자리가 없을 때는 고역이다.
10. 초행길이나 장거리 외출하기
일단 외출을 할 때는 손을 많이 쓸 수 밖에 없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고, 밖에서는 핸드폰을 들고 조작해야 하는데 드는 것도 무리이고 밖에서는 소음 때문에 음성명령도 불가하여 손으로 핸드폰 조작을 많이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초행길 일 경우에는 지도까지 핸드폰으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노래도 그냥 나오는 거 듣고 마음에 안 들어도 바꾸지 않은 채 쪽 들으면서 가거나 장거리를 갈 경우 마음에 안 되는 노래를 계속 듣기가 힘들어서 노래를 바꿔줘야 되어 손을 쓰게 된다. 그래도 앉아서 갈 때는 넷플릭스라도 틀어놓고 무릎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보면서 가기라도 하는데 서서 갈 경우에는 지옥의 멍때리기 시간이 된다.
그 밖에도 건물의 출입문이 너무 무겁거나, 카페를 갔을 때는 커피잔이 너무 무겁거나 등등 손목에 무리가 오는 상황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집에서만 있는 게 힘들긴 해도 또 막상 외출하는 것이 나에게는 무조건 쉽거나 좋은 일은 아니다.
11. 빨래집게 집기
빨래나 바지걸이 등 집게를 손으로 집어야 하는 경우 손목에 힘이 많이 들어 간다. 손목이 아픈 뒤로는 내가 빨래는 전혀 하지 않지만 적어도 옷장정리는 해야되기 때문에 바지걸이에 옷을 걸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조금씩 무리가 된다.
12. 손톱깎기
이것도 집게와 같은 맥락에서 손톱깎이로 손톱, 발톱을 잘라야 할 경우 손 끝에 계속 힘을 순간적으로 줘야 해서 손목에 무리가 온다. 웬만하면 엄마한테 깎아 달라고 하고 있다.
13. 분무기 사용
식물에 물 좀 주려고 분무기로 물을 줬는데 손목이 아프네^^ 너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식물이라도 키워보려고 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곳에서 손목이 아프다. (그래서 식물을 죽인 건 아님... RIP 경경이) 아 그리고 분무기 얘기가 나와서 생각났는데 당연히 다림질도 못 한다. 다리미도 들기에 너무 무겁고 그 무거운 걸 들고 힘을 줘서 다리는 것은 더 무리무리.
14. 콘센트 뽑고 꽂기
이 놈의 콘센트는 왜 이렇게 빡빡한 거야? 누가 스무스한 콘센트 좀 발명 해보세요. 진짜 이게 은근히 자주 해야하는 행위 인데 생각보다 많이 아픔.
15. 팔로 버티는 운동
덤벨 등 팔의 무게를 주는 운동은 당연히 못하고 팔로 버티는 자세, 예를 들어 버피운동 등의 근력운동도 불가하다. 그래서 그런지 팔뚝 살만 자꾸 찌는 중.
16. 허리에 손 짚기
손목이 꺾이는 행위는 최악 중에 최악이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운동하다가 힘들면 자연스럽게 허리에 손을 올리곤 했는데 그걸 못하네. 밖에서 횡단보도 기다리거나 지하철에서 서 있을 때도 손은 그냥 양팔을 그냥 쭉 내리고 가만히 서 있어야 함.
17. 격한 박수와 하이파이브
아무리 흥분돼도 신나서 격한 박수를 치거나 아주 찰진 하이파이브는 금물. 내적 환호만 커져 가는 중.
18. 공공장소에서 문 잡아주기
공공장소에서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문 잡아주는 게 불가하다. 문이 너무 무거워... 그래서 완전 싸가지 없고 예의 없어 보이는데 정말 어쩔 수가 없어요 여러분. 나도 원래 그런 사람 솔직히 속으로 좀 욕했는데 나 같은 상황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이젠 욕 안 한다.
19. 장보고 짐 들어주기
엄마랑 가끔 장을 보고는 하는데 장보고 집에 돌아갈 때 멀쩡하게 보이는 나는 아무것도 안 들고 나보다 훨씬 마르고 가녀린 엄마 혼자 무거운 짐을 다 이고 가야 한다. 누가 보면 정말 불효녀다. 나도 괜히 혼자 찔린다 뜨끔.
20. 택배 뜯기
칼질, 가위질을 못하므로 웬만큼 급한 택배가 아니면 집에 택배가 와도 다른 가족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박스 테이프 뜯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 될 줄이야.
21. 병뚜껑 열기
병뚜껑 돌려서 여는 게 손목에 제일 쥐약인 것 같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다. 집에서는 생수를 시켜 먹는데 사실 엄마도 나처럼 손목이 안 좋아서 아빠가 미리 다 생수병을 따서 냉장고에 넣어 놓는다.
22. 커피 테이크아웃 해서 마시기
물 마실 때도 컵을 두 손으로 받치고 들어야 하는 나에게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서 길에서 들고 다니면서 마시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무조건 앉아서 마시고 가거나 아님 텀블러에 담아 가야만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 이게 은근히 가끔 계획에 없었는데 밖에서 커피 사마시고 싶을 때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 굉장히 아쉽다. 맨날 텀블러를 살 순 없잖아?
정말 내가 이 기간 동안 손목을 최대한 안쓰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보고 듣고 걷기 정도? 너무 당연한 일상적인 것부터 생각도 못 해 본 부분까지 제약이 많아졌고 살아가는 방식도 많이 바꼈다. 특히 당장 일을 할 수 없다 보니 경제적인 활동을 아예 할 수 없게 되었고, 이것저것 내 입맛에 맞게 해먹기 좋아하는 내가 주워진 대로 먹을 수 밖에 없다.
무엇을 하든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을 먼저 해봐야 되고 주위에 부탁을 많이 하게 되었고 눈치도 많이 보게 되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 관계도 많이 달라졌다.
가장 힘든 건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자괴감과 그로 인해 자꾸 무너지는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나로 인해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방금도 열심히 신문 읽고 있는 엄마를 방해하는 게 미안해서 '미안한데 이것 좀 도와줘' 라고 했더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라고 하는 엄마 쥬르륵.
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나를 생각해주며 도와주는 주위 사람들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간 다시 이 일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되는 시간이 돌아올 거라 믿는다.
이 글을 쓴 지 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은 이 상황보다는 아주 조금 나아졌다. 더 많이 좋아지는 때가 온다면 위에 썼던 것들을 다시 하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꼭 남겨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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