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등산하는 디자이너'가 음성인식으로 기록하고 에디터가 편집 및 발행하는 글입니다.
지난 번 연재 시리즈 첫 번째 글을 쓴 이후 손목이 다시 많이 아파져서 도수치료도 더 받고 약도 꾸준히 복용 중이다. 다시 아파진 손목 덕에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어져 버렸다. 영상을 보고 산책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보니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굉장히 심해졌다.
그렇게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최대한 지금의 투병 기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대학원에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딱히 하고 싶은 공부나 진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과를 가야 할지도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살면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대학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사전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원에 대해 알아 보면 알아 볼수록 지원을 준비하는 데에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흡사 취업 준비와 별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손을 덜 쓸 수 있는 진로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지원 준비가 가능할지 조차 미지수였다.
대학원 진학도 미궁으로 빠지자 이 답답한 마음에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풀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직업상담/진로 상담이라는 서비스를 접하게 되었다. 마침 만원 초반대로 온라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을 찾았는데 심지어 할인 쿠폰을 받아 6천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었다.
하루 빨리 상담을 원했기 때문에 구매 이틀 후 바로 상담을 진행했다. 설레고 떨리는 마음과 동시에 진로를 찾을 수 있을 있지 않을까 하는 괜한 큰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지 않도록 최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워낙 가격이 저렴해서 기대치가 낮았던 점도 있다). 아프면서 어떤 것에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점점 터득하고 있다.
하지만 상담은 기대 이상으로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진행되었고 상담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상담을 하길 원했던 부분은, 첫 번째 대학원 진학과 두 번째 손목을 덜 쓰는 직업, 이 두 가지 주제였다. 결론적으로 첫 번째 대학원 진학은 무의미하고 두 번째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주 단호하고 명쾌한 결론을 내주셨다.
먼저 첫 번째 대학원 진학은 내가 최대한 학부 디자인 전공과 연관이 조금이라도 있는 과를 진학하고 싶기 때문에 이미 학부 전공으로 스펙이 있는 상태나 다름이 없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실무와 취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격증이나 툴 등의 기술을 배워서 준비하는 편이 다음 진로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손을 덜 쓰는 직업은 외부에서는 손을 덜 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모든 직업의 뒷단에서는 사무 업무가 필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현재 내가 손목 때문에 공백이 길어지고 있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에 하루 빨리 새로운 직업을 찾으려고 하는 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일단 무엇이 되었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손목이 낫는다는 전제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손목 치료와 재활이 가장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현재 내 상황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두 가지를 말씀 해주셨다. 첫 번째, 장애 진단 받기. 두 번째, 직업 재활 훈련 받기.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음이 쿵 내려 앉을 만큼 충격이 컸다. 장애진단은 고려해 본 적은 있었으나 사실 장애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피하고 싶은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를 통해 경제적, 재활적, 직업적으로 모두 도움을 받으며 현재 치료를 하며 지내는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나 사이트들도 구체적으로 알려 주셔서 손목을 많이 쓰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강조했던 부분은 나와 같은 증상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 커뮤니티를 반드시 찾아서 가입 하라는 것이었다. 분명히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런 커뮤니티가 존재할테니 그 커뮤니티 안에서 치료 방법 등을 공유하고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환자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셨다. 사실 내가 그러기 위해서 이 블로그와 유튜브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워낙 유입이 적다 보니 상담사님 말씀대로 커뮤니티를 열심히 찾아 봐야겠다.
지금은 대학원에 진학 하는 것 말고도 위 두 가지처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내가 1년 넘게 지금까지 투병하면서 들었던 말들 중 이해와 사실에 근거하여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을 콕 집어 마음을 읽어 주셔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위안이 되었다. 상담 내내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꾹 참느라 힘들었다.
만일 오늘 제안해주신 내용들이 설령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담을 통해 얻은 마음의 위안과 위로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다. 당분간은 상담사님이 내게 준 미션들을 차근차근 알아보고 해나가며 지낼 예정이다. 다음 글은 그 미션들의 결과에 대해서 공유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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